마포 창전동 광흥당에서 만난 도심 속 고요한 시간
늦은 오후 햇살이 한강 쪽으로 기울 무렵, 마포구 창전동의 광흥당을 찾았습니다. 홍익대학교 근처의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붉은 벽돌 건물과 현대식 상가 사이로 한옥의 지붕선이 고요히 드러납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그냥 작은 한옥이라 지나칠 수도 있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단정한 기와와 목재의 질감에서 오래된 시간의 기운이 묻어납니다. 광흥당은 조선 후기 가문에서 교육과 제례, 학문 연구를 위해 지은 건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국가유산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문턱을 넘자 툇마루 아래로 비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고, 나무기둥에서 은근한 송진 향이 났습니다. 도심 한가운데서 이렇게 고요한 공간을 마주하니, 마치 시간의 결이 바뀌는 듯했습니다.
1. 홍대입구에서 걸어가는 길
광흥당은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도보로 약 12분 정도 거리에 있었습니다. 큰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창전동 주민센터’ 옆 골목으로 들어서면 한적한 주택가 사이로 안내 표지판이 보입니다. 차량 접근은 어렵지만 근처 유료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주말보다 평일 오전이나 오후 늦은 시간대가 조용했습니다. 골목길을 걷는 동안 현대식 건물 틈으로 한옥의 처마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며, 공기의 결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입구 앞에는 ‘국가등록문화재 광흥당’이라 적힌 석비가 서 있었고, 그 뒤로 낮은 담장 너머로 전통 기와의 곡선이 선명히 드러났습니다. 길 끝에서 마주한 풍경이 도심 속에서 과거로 연결되는 문처럼 보였습니다.
2. 한옥의 구조와 정갈한 배치
광흥당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구조의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 형태로, 전통 한옥의 비례미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마루에 오르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안채와 사랑채로 이어지고, 내부는 목재의 색감이 고스란히 드러난 채 단청 없이 정제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천장은 들보 구조가 드러나 있어 목조건축의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창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바닥에 고요히 퍼졌습니다. 벽면에는 조선 후기 서예가의 글씨가 복제본으로 걸려 있었으며, 그 옆에는 광흥당의 건립 배경과 복원 과정을 설명한 안내문이 놓여 있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아, 한동안은 나무가 내는 미세한 소리만 들렸습니다.
3.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가치
광흥당은 조선 후기 학문 교류의 중심 공간이었던 곳으로, 지역 유림들이 모여 강학(講學)을 진행하던 장소였습니다. 이름 ‘광흥(廣興)’은 ‘학문을 널리 일으킨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건물은 일제강점기에도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었으며, 20세기 초 마포 일대의 교육·문화 활동 거점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문화재 안내문에는 ‘서울 도심에서 보기 드문 원형 한옥 강학당 건축’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다른 사찰이나 서원 건물과 달리 규모는 작지만, 기단의 돌 배열과 지붕의 비례가 매우 정교했습니다. 나무기둥의 결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시간이 만든 색이 공간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습니다. 단아함 속에서 단단한 정신이 느껴졌습니다.
4. 아담하지만 세심하게 꾸려진 공간
광흥당 내부는 외부 관람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지만, 외곽에는 방문객을 위한 작은 쉼터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목재 툇마루 옆에는 신발을 벗을 수 있는 받침대가 놓여 있었고, 입구 옆 벤치에서는 한옥의 지붕선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었습니다. 화장실은 도로 건너편 공공시설을 이용해야 했으나, 주변이 조용해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벽면에는 조명 대신 자연광이 들어와 시간대에 따라 건물의 그림자가 달라졌고, 오후 늦게 방문하면 햇빛이 처마 끝에 걸려 아름다운 반사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공간의 규모는 작지만 관리가 철저해 먼지 하나 없이 정돈되어 있었고, 툇마루 위의 나무결이 햇빛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5. 인근에서 함께 둘러볼 코스
광흥당을 둘러본 뒤에는 홍대입구 방향으로 내려가 ‘서강대 언덕길’을 따라 산책을 이어갔습니다. 이 길은 오래된 주택과 현대적 카페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도심 속에서도 한적한 여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도보 10분 거리에 ‘서강대교 전망대’가 있어 한강을 내려다보며 잠시 머물기에도 좋았습니다. 반대로 상수역 쪽으로 이동하면 ‘서교동 문화거리’와 ‘망원시장’이 이어져 있어 간단한 식사나 커피 한 잔을 즐기기에도 알맞습니다. 특히 ‘창전동 작은서점’에서는 지역 문화유산 관련 책자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광흥당의 건축 사진집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전통 건축을 보고, 현대 문화와 예술로 이어지는 마포의 흐름을 한눈에 느낄 수 있는 코스였습니다.
6.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점
광흥당은 무료로 개방되어 있지만, 내부 출입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주택가 한가운데 위치해 있어 큰 소리로 대화하거나 삼각대를 사용하는 촬영은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봄과 가을에는 햇살이 처마 아래로 들어와 사진 촬영하기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여름에는 모기가 많으니 긴 바지를 권장하고, 겨울에는 마루 위가 차가워 얇은 방석을 챙기면 편합니다. 사전에 마포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문화해설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건축적 특징과 보존 과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습니다. 짧은 관람이지만 준비를 조금만 하면 훨씬 깊이 있는 방문이 됩니다.
마무리
광흥당은 크지 않은 한옥 한 채가 어떻게 시간과 정신을 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었습니다. 화려한 단청 대신 나무의 결이 살아 있고, 조용한 마당 위로 바람이 잔잔히 스쳤습니다. 주변의 현대 건물들 사이에서 오히려 그 단아한 선이 더 돋보였습니다. 잠시 툇마루에 앉아 나무 기둥을 바라보니, 그 안에 담긴 세월의 무게가 고요히 느껴졌습니다. 도심 속에서도 마음이 정리되는 공간, 소리보다 정적이 깊은 곳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봄 햇살 아래 다시 찾아, 꽃이 핀 담장 너머로 비치는 광흥당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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